벗들 둔내 통나무집 회동 + 주문진항 어시장 탐방

이번 벗들 모임에서 압권인 장면이다.  아내가 떠난 빈자리 만큼이나 어깨가 축 널어져 있더니 하박사 횡재했구만..

벗들중 가장 부부금슬이 좋은 소선생 커플 한시도 떨어져서는 살수 없단다.  지금까지도 기적처럼 유치찬란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이 부부에게 박수를...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가 더욱 소중해진다. 특히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벗들은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들이다.
벗들과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마냥 즐겁다. 누가 우리 더러 마작친구라 했던가? 마작은 모임의 맛을 돋구는 양념에 불과한 것일뿐..
30년 지기로 우리 삶의 역사에 벗들이 빠질수 없으며 우리는 진정 그저 함께함으로 행복하다.

둔내휴양림 산림욕 오솔길을 함께 걷는다. 몰입지경에 나물 뜯다 뒤처진 이여사.. 따사로운 봄볕..산들거리는 바람..신록과 봄나물 내음..소곤소곤 벗들의 이야기에 이 길은 마냥 춘흥에 겨워 우쭐거린다. 

여자들이 쑥 캐기에 여념없다. 여자들은 나물만 보면 사족을 못쓴다. 남자들은 대체로 나물캐기에는 시큰둥한 편인데 소선생은 별종이다. 낚시질 못지않게 나물캐기도 즐긴다고 했다. 아내되는 손선생님은 나물캘때 신랑의 손을 놀릴 수 없어 칼도 두개를 준비했다고 했지만 소선생이 즐기지 않는다면 어림없는 일일테지요. 이제 어디 푸짐한 쑥털이를 기대해 볼꺼나.. 

운두령 송어횟집이다. 둔내오면 참새 방앗간 처럼 빠뜨리지 않는 곳이다. 회도 회지만 뒤이어 나오는 매운탕과 나물들도 가격대비 훌륭하다. 두 접시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 여기서 너무 많이 먹어 다음 코스인 주문진 항에서는 횟감을 사들고 와야만 했다.
먹는게 이렇게 즐거을 수가..

구름이 누워 쉬어 가는 곳 "와운정"이란다. 운두령의 고택 "통운문"을 지나 마당 한 켠에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다. 벗들이 이 정자를 아예 전세 내었다. 선인들이 음풍농월하던 곳에서 벗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제는 우리도 시 한 수 암송할 때도 되었는데..


주문진항이다. 운두령횟집에서 오대산길, 진부령을 넘어 오는데 1시간 반 걸려 오후 5시30분, 하나 배는 아직도 빵빵하다. 주문진 등대 길을 걸어서 소화를 시킨 다음에 바다회를 맛보기로 했다. 동해 최대 어항답게 어선들이 꽉 찼다. 근데 바다에서 조업해야할 배들이 이렇게 정박해 잇더도 되는건가? 기름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인데 오징어 값은 형편무인지경이라 어선도 계선점에 도달한 모양이다. 상선에 이어 어선 너 마저도...

구름 사이 황혼이 아름답다. 돌아갈 시간인데 배는 여전히 부르고...

싱싱해서 좋다. 성게 포함하여 잡어 모듬으로 5만원 + 기타 2만원(이렇게 쌀 수가!) 회를 떠는 아주머니의 신기에 가까운 숙련된 솜씨를 넋을 잃고 보다가 둔내 통나무집으로 출발하다. 주문진 회와 더불어 풍성한 저녁을 보내다. 주문진 회는 서울로 공수도 되니 회생각 나면 직접 주문하여 먹는것도 좋겠다.

오랜만에 벗들이 자연 속에서 노닐면서 산해진미를 다 맛보고, 산길을 걸으면서 나물도 캐고, 어시장 산책도 하고..
정말 꽉 찬 일정을 흥겹게 보낸 여행이었다.

by 초현달 | 2009/05/12 17:34 | | 트랙백 | 덧글(0)
하회마을 지도와 버스편

꼬불꼬불 산길로 걷다가 강변길을 걸어가는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 가는 길이 참으로 환상적이다.


by 초현달 | 2009/05/12 15:15 | | 트랙백 | 덧글(1)
하림이와 하동 하회마을 + 병산서원 여행

아들 하림이랑 부전역에서 청량리까지 동해남부선 + 중앙선 완행열차(그래야 무궁화호 이지만)로 장도에 올랐다. 도중에 안동 하회마을에 들러 하회별신굿 탈춤공연 보고 하룻밤 유숙하고 상경할 예정이었다.

기차 안에서 본 동해남부선의 절경 (해운대에서 송정 사이)

 

아들과 단 둘이 순수한 여행 목적의 기차여행을 한다는 기쁨에 가슴이 설렌다. 하림이 녀석은 기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외할머니가 싸준 보따리를 헤집고 먹거리를 찾는다. 낑깡, 한라봉, 토마토, 시루떡 하림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녀석과 낑깡의 시큼떨떨한 맛에 인상을 쓰고 있는 사이 차는 바닷가 절벽의 절경을 선사한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안동역에서 1405분발 46번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에 도착하여 하회별신굿 탈춤공연을 보다. 입추의 여지없이 운집한 군중 사이를 맴돌다 마당안 바닥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않아 한시간 짜리 공연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원래 하회별신굿은 8막으로 몇 시간 걸리는 것인데 공짜인데다가 매주 관광객 유치 목적이라 그냥 살짝 맛만 보이는 모양이다.


점심을 건너 뛴 셈이라 하림이가 배 고프다고 해서 먹을 곳을 찾으니 다시 매표소 입구로 나가야 거기 먹거리 장터가 있단다. 올 때는 셔틀버스로 왔으니 이번엔 오솔길로 걸었다. 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구비치는 낙동강이 아름답다. 하림이 녀석의 청에 산 호박엿을 오물거리며 걷는 오솔길에서 강바람을 실은 춘풍이 나무향기로 우리를 감싼다. 하림이 놈도 즐거워 탄성을 지른다.

부용대를 배경으로 선 하림


하림이랑 나룻배로 강을 건너 용대에 올랐다.


발 아래 사람들이 개미 같다.


부용대에 올라 환희에 찬 하림


부용대에서 바라본 만송정,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 상류가 한 손에 잡힐 듯 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낙향한 류성용 5년 간에 걸쳐 징비록을 집필했다는 옥연정사, 묵향이 아직도 은은하다. 부용대를 등에 업고 있어 더욱 기품이 있어 뵌다. 능히 징비록 같은 대작이 쓰여질만한 곳이다. 여기서 하룻밤 머무르려면 방값이 20만원이란다. 그래도 언제 한번은 가족을 대동하고 묵고싶다.


부용대의 낙조를 맞았다. 하림이 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석양를 받은 만송정의 소나무들, 적송의 몸매가 아름답다.


풍산국민학교 옛터에 있는 노송의 기품, 황혼녁에 찍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하동고택이 문을 닫아 머물 곳을 찾아 마을을 배회하던 중, 아까 버스 안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수능댁이란 초가의 안주인이다. 북촌고택을 지나 집마당으로 들어서니 아저씨가 객사에 장작불을 때고 있다. 주인집과는 대청을 사이에 둔 건넌방이었다.아담한 방을 보고 피곤한 하림이 놈이 어서 쉬고싶은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방이 따뜻해서인지 파리를 열 마리는 잡았을 거다.


 

수능댁이 가르쳐 준 안동찜닭(054-53-2574) 제일 잘 하는 집에 들었다. 벌써 손님들이 방과 대청에 가득했다. 대청의 손님들은 모두 일본사람들이다. 한류와 엔고 덕에 하회마을까지 일본인들이 몰려왔구나 여기서 하루 밤 보낼 줄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여행 마니아들이리라 싶다. 하여튼 하림이 놈 배가 어지간히 고팠던지 허겁지겁 찜닭 한마리 접시가 바닥이 보일 때까지 젓가락을 거둘줄 몰랐다. 자기가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또 많이 먹은 날이라고 했다. 함께 올라온 동동주도 맛이 보통이 아니었다. 낮에 매표소에 들어선 장터마을의 동동주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파주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주인 아저씨 말이 여기 동동주도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다음에 여기 올 기회가 있으면 이 집에서 민박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하룻밤 머문 초가(수능댁)의 대청마루에서 본 마을의 새벽 풍경


풍신국교 터, 멀리 기품노송이 보인다. 부용대가 마주 보인다. 여기서 공부한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안개 낀 마을


마을의 일출


엷은 이내에 감싸인 만송정


괴거목, 이내 낀 강을 배경으로 기품을 과시한다. 역사 있는 마을답게 노거수들이 많아 운치를 더한다. 하루 더 머물면서 오래된 나무들만 찾아 보아도 참 좋을 것 같다.


병산을 배경으로 한 만대루의 하림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 산길과 강변을 걸어서 3킬로라고 했지만, 우리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길 두 차례나 했으니 족히 배는 더 걸었을 것이다. 특히 하림이는 2미터나 되어 보이는 논둑에서 만용을 부리며 뛰어내리다가 볼을 갈고 입술이 반탱이가 되는 수난을 겪고 걸었으니 참으로 먼 길이었으리라. 그래서 병산서원 만대루에 올라 철버덕 엉덩이를 마룻바닥에 쉬게 했을 때 강변의 바람은 그 얼마나 상쾌했으리요.

 

병산서원 가는 길은 산과 강변의 하얀 모래밭과 갈대 핀 범람원의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노래가 절로 나오는 길이었다. 관광객들은 이 길을 걸어서 갈 엄두를 못낼걸야. 거래서 길은 옛길 그대로 잘 보존이 되어 있고 고즈녁하기 그지없다. 걷다가 시흥이 동하면 시도 한 편 쓰고 읊으며 걸었을 선인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만대루

 

만대루에서 내다 본 7폭 병풍을 펼친듯한 병산의 풍경은 자연을 고스란히 정자 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진정 다시 오고픈 곳이다.

 

아들과 함께한 여행, 나는 좋았지만 하림이는 그저 그랬나 보다 안동찜닭 먹은 것 빼고는 별 기억에 남는게 없는듯.. 가끔 눈높이를 아들에 맞출 필요도 있는데 그것이 쉽지않다.

 

다음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먼저 공부하고 그 무대를 찾아 함께 여행하길 꿈꾸어 본다.

 

by 초현달 | 2009/05/12 11:49 | | 트랙백 | 덧글(0)
기장 대변항 풍경

여행은 즐거운 경험이다. 실제로 계획을 짤 때부터 사실상의 여정에 들어간다. 오월 초하루부터 이어지는 닷새간의 황금연휴를 부산 어머니와 장모님을 찾아 뵙고 올라오는 길에 어차피 아내는 시간이 안되니 아들 하림이랑 둘만의 여행계획을 세웠다. 민정이는 시험기간이라 꼼짝도 못하고..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이들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들이 정말 좋아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실천해 간다면 서로에게 참 좋은 추억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준비단계에서 우선 기차표부터 예매했다. 보름 이상의 여유를 갖는다면 15% 정도의 기차비를 절약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차편을 고를 수도 있다. 연휴를 한주간 남기고 예매하자니 아내의 일요일 저녁 상경 KTX가 특실 외는 매진이란다. 비행기 값과 막 먹는 수준의 돈을 내면서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아내가 특실을 향유해 볼까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계획을 세우는데 꼬박 이틀이 소요되다. 물론 일 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서 하긴 했지만 차를 안 가지고 기차와 버스 도보로 여행을 하려하니 연계버스와 숙박문제 그리고 가서 볼거리, 할거리, 먹거리 등을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부산에 머물 때 기장 대변항의 멸치털이, 멸치회와 멸치찌게를 맛보고 안동 하회마을에서 하룻밤 머무면서 탈춤공연과 옛 멋을 즐기는 것으로 대강의 계획을 세우다. 특히 네이버가 제공하는 항공지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옛날의 완행열차가 지금은 무궁화로 부전-안동(4시간)의 동해남부선과 안동-청량리(4시간18) 중앙선을 이용하기로 하다.


이를 통해 미리 여행지에 가 본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 앞으로 가장 느린 기차를 타고 전국의 간이역을 답사하는 여행 프로그램은 어떨까?

5.1.자정 무렵에야 부산 문현동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토요일엔 기장 대변항에 종흥이네 가족과 함께 놀러 가자고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지만 사정이 안되어 마침 석현이도 내려왔으니 구포 이모네와 대변항에서 조우하기로 하다. 부전역에서 81번 완행버스를 이용하거나 동해남부선을 타고 송정역에 내려 송정해수욕장과 용궁사를 보고 대변항으로 북상해도 좋을텐데 우리는 139번 버스로 송정까지 가서 기장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여행을 아내는 퍽 싫어했는데 해운대를 벗어나자 자신도 모르게 버스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버스기사가 대변입구에서 우리를 내려주어 거기서 대변항까지 800m란다 풍광이 좋으니 우리는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하림이와 종명이 함께 앞서가다가 뒤를 돌보니 어머니와 아내는 나란히 하나의 양산을 함께 쓰고 걷는다. 이만하면 근래에 보기드문 사이좋은 고부상이 아니던가. 걷기가 이렇게 즐거운지 새삼 느낀다. 돈 안 들이고 즐거움과 건강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방편이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길 한번 나선다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울까?

 

이윽고 대변항 입구에 들어서니 자가용 차들이 줄을 늘어지게 썼다. 차 없이 거는 자의 기쁨과 홀가분함을 여기서도 또 느낀다. 여행에서 기쁨을 얻으려면 우선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여 가장 간편한 복장에 가장 느린 이동 방법으로 많이 보고 느낄 일이다. 멸치축제가 얼마 전에 끝났다고는 하나 차를 가지고 항구를 찾는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이 많은가 보다. 멸치의 비릿한 내음과 함께 어항 특유의 활기가 시원한 바닷바람에 실려온다. 대변항 입구의 선전간판에 멸치털이 사진을 붙여두었는데 튀어 오른 멸치가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금멸치 같다. 그 광경을 보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 거린다.



, 하나님이 보호하사 여기 그 장면을 남겨두었구나! 그물코에 끼인 멸치들을 털어서 내리면서 그물을 사리고 있는 어부들이 온몸에 멸치 비늘을 뒤집어 쓰고서 작업을 하고있다. 멸치털이 광경을 찍으려고 카메라 앵글을 맞추는 사진작가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부들과 사진작가들의 표정이 대비된다. 어부들은 거의 무표정하게 마지못해 일하는 듯 하고 사진가들은 그 와중에 작품 하나 건지겠다고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멸치회와 멸치젓 그리고 주둥이 뽀족한 꽁치새끼 회가 먹음직스럽게 좌판에 올라있다. 당장 노상에서라도 초장에 듬뿍 찍어 먹고싶은 충동을 일으킬 만큼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포구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 등대이다. 왠지 길을 비춰주는 그를 가까이서 꼭 안아봐야 힘을 얻을것만 같다.


아내는 등대 방파제에 올라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갈매기의 비상을 느끼며 잠시 동안의 자유를 만끽한다. 일상에서 드문 기회이다. 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언제라도 날아야지.



날자 날자 날자

그래 나도 한번 날아보자 구나

 

이모네와 만나서 기장 대변항의 일미인 멸치회, 멸치찌게에 곁들어 짚불 곰장어구이를 시켰다. 부산 지방 소주인 시원소주와 함께 먹으니 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는다. 포구의 어물은 싱싱한데다가 신선한 바닷바람이 풍부한 산소를 실어다 주어서인지 먹고 마시는 것을 오장육부가 춤추며 받아들인다.

by 초현달 | 2009/05/12 11:16 | | 트랙백 | 덧글(1)
개밥바라기별

개밥바라기별

 

석영 작가의 사춘기부터 21살까지 청춘의 방황을 그렸는데 누구보다도 심한 홍역을 치룬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 마냥 가슴을 울린다. ! 그래, 그 시절 나도 그랬었지.. 공감하기도 하고 이건 일탈이 좀 심하지 않나!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낸 자에겐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지 하는 부분도 있다. 어쨌든 퇴근 기차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따금 읽다가 멈추곤 차창 밖의 스치는 풍경을 응시하며 연상의 나래를 펴 곤하며 스스로 즐거워했다.

 

작가는 글 쓰는 재주와 차치하고라도 청소년기에 평범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인생경험을 스스로 선택하여 행한다. 당시는 길을 찾기 위한 방황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소설에 현실감과 생동감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내 생애 전부만큼 나는 사랑하지 못하였네

철이 들기도 전부터 너무 남에게 휘둘리고 자랐으니 제 눈으로 보는 기술을 습득하려고..

우리는 어째서 경치 좋은 호숫가나 모래사장이 근사한 해수욕장에 가면 아무생각도 안 나고,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부둣가나 뱃사람들의 선술집에 가야  정서가 발동되는지..

나는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얼마나 밋밋하고 의미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인호나 나처럼 온몸을 던지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끝내는 신중한 충고를 하며 한걸음 비켜섰다.

이를테면 연애와 결혼, 성공과 실패, 출세와 낙오, 사랑과 야망 따위의 전형들이 결국은 한강을 둘러싼 자본주의 근대화 사회의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음을..

그 길은 내가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 이건 빌딩가의 대로처럼 너무도 뻔하고 획일적이라고 느껴왔던 삶으로 가게 될 확실한 도정이었다. 그러나 벗어났을 때의 공포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막걸리 사발이 몇 잔씩 돌아간 뒤에야 이야기가 활발해졌고 술집 안은 눈발을 머리에 얹고 들어선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내리는가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미열의 나날. 나는 그녀가 해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던 말들을 그제서야 실감했지

밤에 어둠이 짙어지면 방 안에 남포등을 켜놓고

마당이나 별채로 이동하는 낭하에서 부딪치면 밤새 함께 자고 일어났는데도 마주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 어디 가요? 저 뒤 뜰에요. 내가 그리운 것은 이런 애틋함이다.

대단한 건 아니구 그저 이렇게 사는 걸 한번 바꿔보려고 해. 말하자면 기러기라든가 산토끼라든가 다 스스로 알아서 살잖아.

그에게 산다는 게 두렵거나 고생스러운 것도 아니고 저 하늘에 날아가는 멧새처럼 자유롭다. 이른 봄에는 바닷가 간척공사장을 찾아가 일하다가, 오월에 보리가 팰 무렵이면 시골마을로 들어가 보리 베기를 도우며 밥 얻어먹고, 여름이면 해수욕장이나 산간에 들어가 일자리를 찾고, 늦여름부터 동해안에 가서 어선을 탄다. 오징어떼를 따라 남하하다 다시 농촌으로 들어가 가을추수를 거든다. 황금들판에서 들밥에 막걸리 마시고 논두렁에 누워 곤한 낮잠 한숨 때리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단다. 그리고 겨울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쪽방을 한 칸 얻고 드럼통과 손수레 세내어 군고구마 장수로 나선다.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대위는 늘 말했다.

사람은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뭘 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겄냐?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두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어.

어부들은 양은그릇에 찰찰 넘치게 소주를 부어 단숨에 마시곤 했다. 나는 겁이 나서 반그릇쯤 채워서 마셨는데 처음에는 술이 확 올랐다가 작업하면서 대번에 깨버렸고 혼몸에 활기가 돌았다.

대위와 뱃전에 나란히 서서 파랑새담배 한 대씩 물고 멀리 가물거리던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던 때,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담배연기를 길고 거세게 내뿜곤 했다.

소주 두 병을 박스에서 뽑아다 아직도 꿈틀대는 오징어 한 마리를 식칼로 쑹덩쑹덩 서너 토막으로 큼직하게 썰어서는 쟁반 위에 던져놓았다. 우리는 병째로 들고 꿀꺽이며 소주를 넘기고 오징어를 초장에 찍어 우물우물 씹었다. 그제서야 일 끝난 뒤의 나른한 피로가 기분좋게 어깨와 장딴지로 퍼져갔다.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땅거미 질 무렵의 아름다운 고즈넉함을 더욱 연장하고파.. 섬뜸, 달여울 다락골

나느 이제 스무살이 넘어서야 책을 벗어나 고되게 일하는 삶의 활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회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벽지에서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과 함께 자신을 다시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불과 몇 달 동안에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내 가슴 깊숙이 끌어안았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갈 것이다.

 

변변한 일자리는 다 끝났다. 독립된 성인이 되는 길은 한정 없이 늘어나버렸다. 젊음이란 불확실성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이고 선택에 따라서는 무한한 자유와 엄청난 억압에 짓눌려 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리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저녁 무렵 해가 지자마자 서쪽하늘에 초승달과 더불어 나타나던 정다운 나의 별, 개밥바라기별(새벽에 뜨면 샛별). 땅거미 질 무렵은 세상이 가장 적막하고 고즈넉해지는 순간이다.

젊음의 특성은 외면과 풍속은 변했지만, 내면의 본질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밥바라기별의 이미지가 독자의 가슴 속에 물기 어린 채로 달려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을 적어놓고 보니 이 소설은 청소년이 태어난 이유를 찾아가는 방황의 여정을 아프게 펼쳐 놓았다. 사람살이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우선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 또한 우선 가기 편한 길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불태울 수 있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러기나 산토끼 조차도 다 스스로 알아서 자연스럽게 산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이 그리 살지 못하겠는가?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지금 이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대위의 입을 통하여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인생을 그렇게 살아 갈 수 있을까?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이 유일한 존재인 만큼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도 제각각 일 터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살아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는 삶이 좋은 삶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청춘이여 그 길을 찾아 떠나라!

 

by 초현달 | 2008/11/13 17:08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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